‘동정 없는 세상’을 읽고

- 박현욱, <동정 없는 세상>

 

안미진 / 일동고 toy2paper@hanmail.net

 

 

1. ‘어디까지나 근사하게’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주인공 준호에게 보다 근사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준호가 버릇처럼 말하는 ‘한 번의 경험’ 이외에 정말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 것이 바로 그 ‘한 번의 경험’이었구나 하는 아이러니였습니다.

준호는 평범한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입니다. 명문대를 꿈꾸며 치열하게 입시 경쟁에 시달리는 것도 아닌, 공부가 아닌 음악이나 요리, 그림이나 글 쓰는 것 등 공부 이외의 분야에 대한 재능이나 관심을 가지고 학교 일과 시간을 줄여 가며 꿈을 위해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도 아닌, 되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뚜렷한 목표 의식도 없는, 그냥 누구나 하는 것이기에 당연하다고 생각되어 학교에 나가 출석을 하고 가끔씩 자습을 나와 친구들과 함께 피씨방이나 오락실에 가는 것을 즐겨 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입니다.

그래서인지 준호는 하루 하루가 심심합니다. 그저 빨리 어른이 되어 답답한 학교를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싶은데, 저의 눈에 비친 준호에게 학생이 아닌 어른이 되는 것, 그래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의 첫 관문으로 한 번의 경험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따라서 준호에게 심심한 하루 하루를 조금의 재미와 희망으로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마스터베이션이나 컴퓨터에 폴더별로 구분해 놓은 야한 동영상들, 진정한 남자가 되었다고 떠드는 친구들의 모험담을 듣는다거나 여자친구 서영이와 어떻게 하면 한 번 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사실 이 대목이 조금 슬펐습니다. 누구나 세상 속으로 화려하게 혹은 치열하게 뛰어 들기 이전에는 그 준비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그 준비를 위한 시간이란 조금 어둡고 힘들 수도 있지만,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이들에게는 그 시간이란 정말 막막하고 암담하고 도피하고 싶은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 준호에게 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특히 수능 이후의 시간은 바로 그런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10대의 남자 청소년이라면 성적인 욕망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고 또한 건강한 사실이지만, 제 생각에 준호에게는 무엇도 그 허전함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막막함을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도피를 위해 은연 중에 자신의 모든 생각을 성적인 욕망 하나에 집중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서영이와의 몇 번의 노력 끝에 준호는 그토록 갈망해 왔던 한 번의 경험을 갖게 됩니다.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의 첫 번째 시도, 그리고 서영이의 고통을 무시한 채 자신의 일방적인 달려듦이었던 두 번째의 시도를 거쳐 서로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담긴 세 번째의 시도를 통해 자신이 꿈꿔왔던 한 번의 경험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경험이 준호로 하여금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 줍니다.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생각, 정말 멋지고 근사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듭니다. ‘어디까지나 근사하게’ 스무 살이 되고 싶고, 대학이라는 곳에 가고 싶고, 명호 삼촌이 말해 준 인문학적 소양을 갖고 싶은, 그런 꿈을 가지게 됩니다.

한 번의 경험이 일어나기 이전의 준호에 비해 이후의 준호는 조금 성숙해진 사고와 주체적인 의식과 행동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한 번의 경험은 준호에게 정신적 성장의 계기를 제공합니다. 우리가 흔히 보아 왔던 성장 소설에서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큰 상처나 좌절, 실패의 경험을 주인공이 극복함으로써 정신적으로 한 단계 성숙해 가는 플롯을 보여 줍니다. 이 소설은 다른 성장 소설과 비교할 때 성장의 계기로서 큰 상처나 좌절, 실패의 경험을 보여 주지는 않지만, ‘한 번의 경험’이라는 것 자체가 그러한 것을 대신합니다. 요즘의 아이들 또한 겉으로 보기에 티가 날 만큼의 큰 상처를 겪기 보다는 준호와 같이 내면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그러나 꼭 극복해야 할, 자신만의 고민이나 생각 같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동정 없는 세상’은 현실적으로 많은 청소년들이, 특히 남자 청소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성장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2. 생각해 볼 것들

 

1) 주인공 준호가 보여 주는 성적인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일까요? 아니면 왜곡된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 것일까요?

10대 청소년이 가질 수 있는 바른 성의식을 위해 교사의 입장에서, 혹은 그 시간을 지나 왔던 어른의 입장에서 보다 건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2) 요즘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성장의 계기가 될 만한 내적인 고민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그것이 그들의 성장에 있어서 올바른 발판이 되기 위해 교사로서 가질 수 있는 역할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3) 청소년기를 지나 와도, 오춘기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좌절하고 극복하고, 다시 성장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가 겪고 있는 성장통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